Marie Bryant (마리 브라이언트)
마리 브라이언트는(Marie Bryant) 미시시피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뉴올리언스로 이사하였다.
10살에 그녀의 교회에서 조세핀 베이커를 흉내 내었다.
그녀는 시카고(Chicago )의 그랜드 테라스 카페(Grand Terrace Cafe)에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과 함께 하는 공연으로 데뷔하였다.
그녀는 리오넬 햄튼(Lionel Hampton), 에델 워터스(Ethel Waters)를 비롯한 많은 유명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했는데, 심지어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과는 투어를 함께 하기도 했다.
1941년 듀크 엘링턴과 함께했던 레뷰(풍자적인 뮤지컬) “Jump for joy”에서 그녀와 폴 화이트(Paul White)가 함께 공연한 “Bli-Blip”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녀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공연과 뮤지컬을 선보였다. 또한 주로 탭댄스와 불레스크에 관해 댄스 강사 및 안무가로도 활동 했으며, 말론 브랜도(Marlon Brando), 심지어 진 켈리(Gene Kelly)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진 켈리는 그녀에 대해 ‘내 생애 만났던 댄서들중 가장 정제된 댄서(one of the finest dancers I've ever seen in my life)’라고 칭했다.
그녀는 영화사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 MGM, 콜롬비아 등 많은 영화사에서 댄스 코치 및 안무가로서 일하면서 그녀만의 댄스 강습 스타일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를 ‘컨트롤드 릴리즈(controlled release)’라고 불렀다.
브라이언트(Bryant)는 1950년대까지 계속해서 뮤지컬 쇼에 출연했으며, 1952년 그녀는 할렘 블랙버즈(Harlem Blackbirds)와 함께 투어를 했고, 회사의 매니저인 존 A. 라자쿠마르(John A. Rajakumar)와 결혼하게 되었다.
1951년 투어공연은 유럽, 뉴틸랜드, 호주에서 펼쳐졌고, 1953년 런던에서 그녀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풍자 노래인 칼립소[칼룹소는 일종의 서부 인디언을 칭하며 스윙이 곁들여진(Syncopated) 아프리칸 리듬과 상투적인 단어들이 어우러진 시사와 관련된 테마의 노래] 인 “The Plea”는 당시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영국에 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총리 D. F. 말란(D. F. Malan)의 방문과 겹쳐 큰 논란을 일으켰다.(그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문제는 세계적인 이슈였다)
1965년 그녀의 남편인 라자쿠마르가 세상을 떠나게 되며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가 마리 브라이언트 댄스 스튜디오(Marie Bryant Dance Studios)를 운영했다.
1978년 로스 엔젤러스에서 그녀는 58세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Marie Bryant (1938) performing an exotic African dance
(이국적인 아프리카 무용/벌레스크)
Bli-Blip (with Paul White(폴 화이트)) (1941) in Duke Ellington's(듀크 엘링턴) "Jumpin' for Joy" (Revue/musical)
Singing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 in the short film "Jammin' the Blues"
(노래도 잘 부른다!)
(노래도 잘 부른다!)
Dancing with Cab Calloway(캡 캘로웨이) (from 1:12)
With Harold Nicholas (해롤드 니코라스) in Mr. Beebe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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